무형의 관념

Posted on August 9, 2024

지난 겨울, panpanya의 만화에 대한 서평에서 나는 무형의 관념 에 대해 수차례 언급한 바가 있다.

소녀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 소녀가 바라보는 시야엔 그 너머에 존재하는 무형의 관념들일 때가 많다. 그것은 작가의 단상이 개입된 세계로 작가는 소녀를 통해 소소한 일상과 사물을 통해 자신의 사념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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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위 인용문에서 가리키는 무형의 관념 이다. 일상 미스터리를 즐기기 위해서는 독자 또한 다소의 노력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눈앞에 보이는 상황과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보지 않고 한 단계 추상화시키는 과정이 포함된다. 심플하게 눈앞에 있는 이야기의 자극성을 추구한다면, 일상 미스터리의 표층적 이미지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이 지루해 보이는 표층을 뚫고 진정한 즐거움을 맛보려면, 현재 눈앞에 보이는 이야기를 메타포로써 받아들이고, 그 뒤에 있는 무형의 관념을 –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적용되어도 그 대칭적 구조는 유지되는 아이디어를 –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그 무형의 관념이라는 것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고 싶어진다. 관념이란 애초에 무엇이고, 무형의 관념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인용을 보면, 작가의 단상이 개입된 세계를 무형의 관념이라 칭하고 있다. 단상이라 함은 단편적인 생각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작가는 그 자신의 단편적인 명제들을 – 생각이 곧 명제인지는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고 – 선택적으로 주입시킨 그 무언가를 작품에 투영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기초로써 모종의 다소 튼튼한 이론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인즉슨 철학하기 의 형식을 따른 접근이 좋을 것으로 보였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적 접근에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가 적절할 것이다. 최근에 조중걸 님의 「논리-철학 논고 해제」를 접하게 되었는데, 필자 본인이 나름대로 이해한 TLP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의 구조를 좀 더 명료하고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해제」의 머릿말에는 “독자는 먼저 철학 개요를 공부해야 한다. 허공에 색칠할 수는 없다.” 라는 다소 맵싸한 선언이 적혀 있었는데, 필자의 경우는 「해제」를 접하기 전에 「논고」를 접하고 그걸 이해하기 위해 머릿속에 캔버스를 직조하려 시도한 경우다. 따라서 이 마음속의 캔버스가 과연 제대로 된 대상인지가 다소 의뭉스러우나, 자신이 생각한 부분이 「해제」에도 다수 등장하는 것을 보고 우선은 전진하기로 결정한 바가 있다.

하여, 위의 두 책에 의존해 나가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풀어가 볼까 한다.

<작업중>